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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의 창작 사니와가 등장합니다

※ 지인의 창작 혼마루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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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찾아든 혼마루에는 언제부턴가 고양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로 둥글게 몸을 만 작은 생명체들이 나타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처음에는 고코타이나 나키기츠네처럼 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남사들이 먼저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은 봄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거의 모든 남사들에게 퍼졌다. 물론 이 혼마루의 주인인 아리아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녀도 언제부턴가 꽃구경을 나올 때면 고양이들을 어루만지거나 미리 사 두었던 고양이 먹이를 건네거나 하고 있었다.
유달리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날, 아리아는 근시인 하치스카와 함께 혼마루에서 가장 큰 벚나무를 올려다보러 나왔다. 가지 위에 앉아있던 두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기지개를 켜거나 귀를 쫑긋거렸고, 나무 둥치 근처에서도 네댓 마리가 나타나 아리아의 발치에 몸을 부볐다. 아리아는 나무 곁에 앉기 좋게 놓인 바위 위에 앉아 그들 중 한 마리를 무릎 위에 앉게 했다. 주인의 무릎 위에서 눈을 감고 가르랑대는 고양이를 보며 하치스카가 말을 걸었다.

"그 고양이는 자주 본 것 같네."
"털 색깔 때문에 눈에 잘 띄죠. 야생 고양이인데도 사람을 잘 따르니 신기한 일이지요, 미츠는."
"미츠?"

하치스카가 눈썹을 치켜떴다. '꿀'을 뜻하는 일본어 단어는 아리아의 꽃무늬 기모노 자락에 앉아 몸을 둥글게 만 고양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위화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듯, 아리아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 미츠가 아니에요. 미츠타다 도노의 미츠에요."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그러고 보니 털 색은 비슷하네."
"예. 이 아이, 미츠타다 도노와 어딘가 닮았어요. 한쪽 눈을 감고 있거나 하진 않지만요."
"그렇게 애교 있는 사람이었던가?"

다른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던 하치스카가 웃음을 삼켰다. 아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양이의 턱을 간지럽혔다. 그녀에게 '미츠'라 불린 검은 고양이는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풀고 살짝 뒤집었다.
그 때, 다시 바람이 불었다. 벚꽃의 잎이 우수수 떨어졌고, 몇몇 어린 고양이들이 꽃잎을 쫓아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아리아의 머리카락에 벚꽃잎이 붙자, 그때까지 배를 슬쩍 보이며 누워 있던 미츠가 몸을 일으켜 벚꽃잎을 제 발톱으로 잡아내렸다. 고양이의 발톱질에 머리를 빗겨내려졌으니 아플 법도 했지만 아리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미츠가 벚꽃잎을 혀로 핥다가 뱉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읔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 때, 줄곧 그녀의 무릎 위에 있던 미츠가 폴짝 뛰어내렸다. 미츠는 잠시 아리아의 발치를 맴도는가 싶더니, 혼마루 본관 쪽으로 종종 달음질쳐 사라져 버렸다. 고양이캔을 두 개째 따던 하치스카가 눈을 깜작였다.

"살갑게 굴면서 갈 때는 금방 가 버리네, 저 아이. 식사도 안 하고."
"그래서 미츠타다 도노 같다는 거에요."

아리아는 중얼거렸다. 밝은 하늘색 기모노에는 아직 고양이의 검은 털이 붙어있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손으로 집어 들여다보다가 바람결에 날려 보내는 아리아의 표정은 언뜻 건조해 보였다. 그러나 그 표정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격한 감정표현 중 하나였다.

"무척 살갑게 굴지만, 떠나갈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나가요."

그녀의 독백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하치스카는 묻지 않았다.

***

혼마루 본관에 딸린 식당에서, 미츠타다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그 날 아침에는 생선찜을 했기 때문에 남은 토막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들이 서로 앞발로 투닥거리며 생선 조각을 물어뜯는 것을 지켜보던 츠루마루가 피식 웃었다.

"이건 놀라운걸. 이 녀석들도 제법 매섭게 놀잖아."
"그렇게 싸우지 않아도 오늘은 토막이 많이 남았으니까, 싸우지 말고."

덩치 큰 고양이에게 밀려 벌렁 나동그라진 앳된 새끼고양이를 한쪽으로 데려와 생선 머리를 주며 미츠타다가 다정하게 말했다. 점점 고양이들이 많이 다가오는 것을 보던 츠루마루가 팔짱을 끼고 놀리듯 말을 꺼냈다.

"이국의 동화 중에는 쥐를 피리로 몰고 다닌 남자가 있다는데, 그 동화 속편으로 고양이를 생선으로 몰고 다닌 검이 만들어지겠는걸."
"하하, 설마."

미츠타다는 어깨를 으쓱하며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아직 두툼한 생선 조각이 하나 남아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그걸 잡으려고 팔짝팔짝 뛰는 걸 손을 높이 올려 피하며, 미츠타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따로 빼 놓은 거야?"
"이 시간쯤이면 꼭 오는 아이가 하나 있어서. 오늘은 먹으려나... 아, 저기 왔다."

츠루마루는 미츠타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채 방향에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다. 봄이라 아직 다 나지 않은 파릇파릇한 옅은 풀색 위로 그 색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그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미츠타다는 무릎을 굽혀 생선을 내밀었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는 그 생선을 무시하고,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쪽 손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혀를 내밀어 장갑 위를 할짝거리는 모습을 본 미츠타다는 쓴웃음을 지었다.

"또 안 먹는구나."
"고양이가 생선을 안 먹는 건 또 처음 보네. 놀라운 고양이야."
"사람은 잘 따르는데 어째서 먹이는 받아주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 이렇게 따라주는 건 기쁘지만."

고개를 내두르면서도 미츠타다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리를 굽혀 땅에 몸을 내려놓았다. 미츠타다는 몇 번 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가 손을 떼었다. 줄곧 눈을 감고 손길을 즐기던 고양이가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고양이와 시선을 맞추는 미츠타다의 등 뒤에서 츠루마루가 허리를 숙이고 물었다.

"그 녀석, 꽤 자주 본 거 같은데. 이름은 있어?"
"아리아....는 어떨까."
"하아?"

츠루마루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제 관자놀이를 검지로 툭툭 두들기면서 미츠타다를 내려다보았다.

"어이어이,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한테 제 주인의 이름을 붙이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응, 방금 건 농담이야. 딱히 이름은 없어."

미츠타다는 다른 고양이들의 밥그릇을 채워주며 고개를 저었다. 검은 고양이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미츠타다를 심기 불편한 듯 올려다보고 있었다. 느릿느릿 꼬리를 흔드는 것을 본 미츠타다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고양이의 턱을 간질여 주었다.
제 발치에 다가온 다른 고양이들 중 제일 작은 아이를 안아올리며 츠루마루가 한숨을 쉬었다.

"뭔가 더 귀여운 이름도 있잖아. 왜 하필 주인 이름이었던 거야?"
"이 아이, 주인을 많이 닮았는걸. 눈이라던가."

그렇게 말하며 미츠타다는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렌지색이 섞인 한 쌍의 금빛 눈동자는 검은 털빛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눈이 붕 떠 보이지 않는 것은 전체적으로 고양이의 인상이 온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눈은 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츠루마루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고양이한테 제 이름을 붙였다고 알면 그 고지식한 녀석이 뭐라 할지 모르겠는걸."
"별 말 안 하지 않을까? 나로서는 별 말이라도 해 주면 좋겠지만."

미츠타다는 계속 고양이를 어루만졌다. 바닥에 떨어진 생선 조각 하나를 집어 슬쩍 내밀었지만 고양이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그것을 보며 미츠타다는 역시, 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 아이는 정말 주인을 닮았어. 곁은 허락해주는데 입은 열어주질 않아.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윤기나는 검은 털의 고양이를 머리에서 등까지 쭉 쓰다듬는 손길에는 평소보다 무게가 실려 있었다. 츠루마루는 다른 고양이를 품에서 내려놓으며, 고양이를 쓸쓸하게 바라보는 동료 남사를 보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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